누가 폭력집단인가? 

 

- 국가폭력과 섬뜩한 애국심 

폭력은 본래 그들의 존재방식이다. 마르크스와 더불어 사회과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막스 베버는 “국가란 정당한 혹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폭력수단에 기초를 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고 말했다. 트로츠키 역시 “모든 국가는 폭력에 기반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민주주의 현대국가에 적용하는 것은 억지라고 할 이들이 있겠지만, 법과 제도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국가가 국유화된 폭력으로 다가가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따라서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애국’은 폭력에 따르고 가담하는 행위로도 해석된다. 때문에 극단적인 애국심은 종종 가장 극단적 폭력인 전쟁을 부르기도 한다. 지금 우리사회의 일각이 애국심으로 펄펄 끓고 있다. 그중 섬뜩한 애국자는 바로 중앙일보 김진 기자다. 그의 고정칼럼 <시시각각>은 그야말로 시시각각 전쟁을 선동해왔다. 천암함사태 당시 그는 ‘전쟁을 결심하자’고 했고, “국민이 3일만 참으면” 전쟁을 벌여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F-15K가 울고있다”며 정부에 또 전쟁을 요구했다. 

 

- 다양한 폭력 중에 선택하기 

국가가 그렇듯 모든 지배행위는 폭력적 속성을 갖는다. 사르트르의 동지였던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인간을 “다양한 종류의 폭력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존재”라며, 폭력을 인간의 불가피한 문제로 설명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말한 폭력은 대화나 설득을 통해 타인을 자신의 의지에 귀속시키는 행위까지를 포괄하지만, 그래도 무리한 개념짓기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메를로퐁티의 주장을 ‘국가와 자본은 “다양한 종류의 폭력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존재’라는 말로 바꿔보면 별 무리 없이 들린다. 이밖에도 가정이나 회사 내의 폭력들도 오로지 삐뚤어진 인격의 소산이기보다는, 뭐든 지배하고 강제하려드는 자들의 속성에서 연유했음을 봐야한다. 지배자들은 다양한 방식과 제도로써 폭력을 행사해왔으며, 법의 이름으로 가해진 폭력도 적지 않았다. 인혁당 사건은 가장 대표적인 사법살인이었고, 용산참사 판결 역시도 법으로 포장된 지배집단의 폭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 너무 과격한 폭력 

폭력의 선택 가운데 사람의 신체를 직접 위해하는 폭력은 가장 극단적이고 과격한 선택이다. 한화 김승연 회장의 구타사건에 이어 최근, 한 운수노동자를 주먹과 몽둥이로 때려 피투성이로 만들고 1대에 1백만 원이라며 돈을 던져준 SK재벌가의 최철홍이 바로 그 경우였다. 과격한 폭력을 선택했기에 그는 여론의 거센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유사한 장면이 영화나 드라마에도 등장하는데, 실제로 사건을 접한 대중들은 “정말 돈 많은 사람들한텐 흔한 일인가보다”며 놀랐고, 이를 보도한 연예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이 사건에는 보수언론조차 혀를 찼지만, 수준 이하 도색신문인 문화일보는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최철홍 사장을 비난했지만, 그 비난도 결국은 재벌들을 위한 것이었다. 폭력행위를 엄벌하고 폭력의 본질적 근원과 본성을 들추기보다는, 고작 ‘재벌의 얼굴에 먹칠하지 말라’는 투였다. 조선은 한 개인의 일탈이 “재벌기업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채질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을 뿐이다. 노동자의 파업이나 집회에서 발생한 사소한 마찰을 트집 잡아 ‘폭력집단’으로 낙인찍고 매도하던 그들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솔직히 말하건대 지배하는 자든 지배받는 자든 모두 폭력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지배하고 강제하는 자는 근본적으로 폭력성을 수반한다. 다만, 물리적인 직접 폭력이냐 법과 제도로 은폐된 폭력이냐의 구별이 남을 뿐이고, 야만적 폭력이냐 세련된 폭력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한 모든 폭력은 필연적으로 당하는 이에게 심각한 비참함과 좌절감을 쑤셔 박기 마련이다. 그리고 비참과 좌절은 아무래도 국가 관료나 재벌들과 매우 거리가 먼 정서라는 점에서, 이 사회의 일상적 폭력집단이 과연 누구인가를 생각하게끔 한다. 나의 어머니는 법 없이도 살 분이지만, 대통령께서는 단 하루도 추상같은 법과 경찰 없이 살지 못할 위인이다. 폭력은 지배자의 본성이고 법과 법체계는 대부분 지배자의 이성일 뿐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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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타인의 무대가 돼준 적이 있는가. 5년 동안 무대로 활용돼온 민주노총 방송차가 무대 뒤로 사라졌다. 방송차 무대는 민주노총 후반부 역사와 함께 했다. 집회문화의 보증수표였다. 무대는 방송차가 없을 때도 존재했지만 무대차가 등장하면서 현장이 계획적으로 꿈틀댔다. 무대가 간 곳이 200여곳을 넘는다. 조직 노동운동의 산 증인인 셈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무대와 함께 했다. 기쁨과 슬픔이 무대와 함께 했다. 무대는 친구였고, 동료였고, 동지였다. 무대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벙어리였고, 귀머거리였다. 모든 우리의 의식과 행위는 무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무대를 기다렸고, 여지없이 무대는 우리를 맞아줬다.
 
무대차의 시동은 소외와 외로움과 고통의 신호였다. 무대차는 연대와 협력의 모범이었고 전설이었다. 어떤 이도 무대를 앞설 수는 없었다. 정치인도, 대표자도, 지도자도 무대 없이는 설 수 없었다. 우리는 무대를 통해 삶의 신호를 배웠고, 의지의 언어를 습득했다. 무대를 통해 투지를 확인했고, 운동의 의미와 소중함을 깨달았다.
 
무대는 조직과 문화가 연결되는 통로였다. 우리는 무대를 통해 현실을 분석했고, 무대를 접으면서 뒤를 돌아봤다. 무대는 현장으로 가장 먼저 달려간 연대의 일꾼이었다.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해 달려간 무대는 그대로 현장의 소리를 전달하는 대변자였다. 무대의 에너지를 통해 조직이 힘을 발휘했고, 조합원들이 용기와 기운을 얻었다. 무대차는 든든한 또 다른 조합원이었고, 카운슬러였다.
 
무대는 이성과 감성이 오가는 공감대의 교차로다. 무대는 우리의 언어였고 제스처였고 기호였다. 무대는 우정의 무대였고, 상징의 공간이었다. 무대는 소외의 대리장이었고, 응어리의 해결장이었다. 우리는 무대를 통해 소통했고, 타인의 신호를 받아들였다. 무대는 경쟁의 연기장이 아니라, 진정성을 토해내는 자유와 평등의 시험장이었다.
 
무대는 오프라인의 로그온이고 접속장이었다. 우리의 서사는 접속한 무대를 통해 시작됐다. 무대는 현실의 페이지를 끝없이 펼쳐보였다. 무대가 끝나야 다음 행위를 기약할 수 있었다. 무대가 시작하고 끝나는 타이밍 판단은 항상 우리의 고민이자 보람이었다.
 
무대는 현대문명의 통로이고 자아실현의 장이다. 무대는 시간을 공간으로 접합시키는 매직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대는 늘 당위였고 의무였다. 우리는 늘 함께였지만 무대는 늘 혼자였다. 무대는 늘 외관이었고, 독립된 ‘무엇’이었다. 우리는 무대를 통해 자신을 발견했고, 무대는 우리를 통해 자신을 세웠다. 무대 앞은 늘 역동적이었지만 무대 뒤는 에너지의 소모장이었다. 무대는 봉사와 희생의 대명사였다.
 
무대차는 온갖 사연의 보관소였다. 현장에서 파손은 물론이고 빼앗기는 경험도 있었다. 무대차는 민주노총을 중소영세 사업장과 매개하는 역할도 거뜬히 했다. 무대가 없는, 무대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 대한 지원과 협력의 산물이자 약속이었다. 무대차는 정체와 이동을 수시로 변환시키는 트랜스포머였다. 너와 나를 연결해주고, 서사와 스토리를 제공하는 의식장치인 무대차는 우리의 팔과 다리였고 입이었다.
 
무대는 조직의 내면이 외형화하는 곳이다. 무대는 조직의 의식을 응집의 형태로 묶어주는 곳이다. 신속하고 유연한 시스템 방식으로 집회문화의 조직자인 민주노총 무대차는 든든한 후원자이고 버팀목이었다. 무대는 우리의 용기를 북돋웠고 실수를 감싸 안았다. 대중과 직접 대면하고 호흡하는, 진정 파수꾼이었고 방패막이였다.
 
삶은 무대다. 21세기 우리의 현장은 상징과 기호로 가득한 무대 위에 존재한다. 너와 나는 무대를 통해 드나든다. 우리는 모두가 배우이고 연기자다. 매일 우리는 많은 역할 속에 하루를 보내고 정리한다. 우리는 모두가 조연이고 주연이다. 너는 나의 무대이고, 나는 너의 무대가 돼야 한다. 우리 모두가 현실을 공유하고 참여하는 연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 경쟁을 하지만 협력의 소중함도 함께 배운다. 정작 우리가 한시라도 진실의 연기를 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무대를 마련해야 한다. 연기와 상징이 가득하지만 삶의 진정성을 펼쳐 보이는 무대가 그것이다. 무대가 사라지는 날 음향국장의 아픔이 그제야 무대 위로 올려졌다. 무대는 그에게 기쁨이었고, 신명이었다. 무대의 현수막과 함께 날리는 음향국장의 머리카락이 새삼 그립다. 땀방울이 눈에 선하다.

강상철 조직국장 prdeer@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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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이정호의 미디어비평]
환란 3인방과 대통령의 인사정책
 

이정호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버티다 못한 한국은 결국 손을 들었다. 캉드쉬 IMF(국제통화기금) 총재와 임창렬 경제부총리(재정경제원 장관)가 마주 앉아 만년필로 사인을 주고받았다. 97년 연말 한국은 이렇게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인다.

당시 언론은 조인식 때 임창렬 장관이 사용한 만년필이 외제였니, 국산이었니 하는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임창렬 옆에서 장관을 보좌했던 이는 강만수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다. 당시 강 차관은 TV 화면엔 조연으로 잠시 얼굴이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첫 조각에서 IMF 구제금융의 숨은 조역이었던 강만수를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뽑았다. 여론은 반발했지만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만 1년 동안 그를 경제정책의 수장으로 기용했다. 2009년 2월 안팎의 많은 반발 끝에 강 장관을 끌어내렸지만 곧바로 대통령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자리에 앉혔다. 다시 6개월 뒤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으로 옮겨 지금까지 기용하고 있다.

97년에 지금의 ‘어륀지’보다 더 인기 있던 ‘펀더멘털’이란 영어 단어를 온 국민에게 가르쳤던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IMF 직전 불명예 퇴진했다. 당시 강경식 부총리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김인호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은 ‘환란 3인방’으로 낙인찍혔다.

이들은 최초의 여야정권 교체에 힘입어 98년 5월18일 뜻 깊은 날에 환란의 책임자로 구속돼 구치소에 들어갔다. 언론은 검찰의 입을 빌려 이들을 단죄하기 바빴고, 이들의 수갑차고 수의 입은 모습을 1면에 주로 실었다.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는 다소 억울했다. 강경식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이 틀어쥐고 있던 경제정책에 여러 차례 반발했던 정황이 나타났지만 여론은 이 총재의 호소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은 대부분 90년대 후반 한솔 PCS 휴대폰 사업자 선정과 자금 위기에 처한 해태, 신세계 재벌기업의 특혜 대출에 뒷배를 봐줬다는 죄목이었다. 그러나 ‘환란 3인방’은 이후 1심과 2심에서 연달아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지난주 우리 신문은 오랜만에 환란 3인방 중 한 명의 근황을 소개했다.(동아일보 11월17일자 31면,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장 소비자정책 민간위원장에>) 김영삼 정부의 후반기 경제수석이었던 김인호가 당사자다. 나이 칠십 줄에 달한 구시대 인물을 이명박 대통령은 잊지 않고 챙겨 주요 정부위원회 수장에 앉혔다.

김인호 전 경제수석이 차지한 이번 자리는 공정위직속 소비자정책위원회의 제2대 민간위원장이다. 환란 이후 김 전 수석은 법무법인 세종의 부설연구소인 시장경제연구원에 지금까지 적을 두고 있다. 김 전 수석이 김영삼 정부하에서 경제수석 자리에 오르자, 당시 언론은 <반재벌 성향의 시장주의자> <원칙주의자>라는 수식어를 동원해 추켜세웠다. 반재벌 성향이라고 명명했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재벌 중심의 법률 변호로 이름난 세종에 자리 잡았다. 법무법인 세종은 김앤장과 쌍벽을 이루는 대형 로펌의 대명사다.

김 전 수석은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던 66년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박정희의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초안을 마련한 경제기획원에서 사무관으로 실무를 맡았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경력이면 언론의 표현대로 ‘반재벌 성향’을 갖기 매우 어렵다. 그가 미국 유학 시절 클래식 음악에 심취했고, 98년 5월 환란으로 서울구치소에 들어갔을 땐 악보를 보면서 울분을 달랬다고 해서 ‘반재벌 성향’이라고 할 순 없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정책은 물불을 안 가린다. 이유 여하를 떠나 과거 전력 때문에 온 국민의 비판을 받았던 인물이라도 한 번 자기 사람이면 반드시 챙긴다는 거다. 국민을 우습게 아는 안하무인 인사의 대표단수다. 온갖 경제 범죄로 지탄을 받은 재벌 회장이 사면 직후 국민들보고 “법을 지키라”로 일갈하는 수준이다. 
 
이정호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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